윤리, 도덕 2015. 2. 1. 15:45

아키발드 알렉산더와 도덕법



                                                                       by 김원호(dent4834@hanmail.net)


다음의 글은 “The Law is Not of Faith; Essay on Works and Grace in the Mosaic Covenant. P&R Publishing. 2009”에서 D. G. Hart의 글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1. 아키발드 알렉산더와 도덕학 논쟁의 배경


1. 프린스턴의 초대학장


1812년은 프린스턴 신학교가 설립된 해로서 초대 학장으로 임명된 아키발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는 1851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40년간에 걸쳐서 장로교인으로서 칼빈주의를 프린스턴의 신학적 특성으로 견고히 자리잡게한다.


2. 에드워즈의 후예들


당시의 뉴잉글랜드는 에드워즈의 후예들에 의하여 형성된 뉴잉글랜드신학(New England theology, 혹은 New Divinity라고 불리기도함)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스코틀랜드의 도덕 철학의 영향을 받은 칼빈주의자로서의 에드워즈의 후예들은 프린스턴을 중심으로한 장로교회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된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1837년 미국의 장로교를 새학파 장로교회(new school presbyterian church)와 구학파 장로교회(old school presbyterian church)로 분열 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3. 스코틀랜드 도덕 철학의 도전


스코틀랜드 도덕 철학 (Schotish moral philosophy)을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는 대륙은 물론 북미에 까지 기독교 사상 체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칼빈주의를 배경으로한 개혁주의에 심각한 도전을 주게된다. 뉴잉글랜드는 에드워즈의 후예들로부터 시작된 스코틀랜드 도덕 철학의 영향으로 프린스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 절대적 영향을 주었으며 프린스턴 신학도 계몽주의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4. 칼빈주의의 위기


알렉산더가 프린스턴의 학장으로 재임하던 기간에 뉴잉글랜드에서는 뉴잉글랜드 신학의 "속죄에 관한 도덕통치론 (moral governmental theory of atonement)"이나 "사심없는 선행 (disinterested benevolence)" 개념들의 절대적 영향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해석이 칼빈주의의 중심교리인 "그리스도의 대속"개념을 대체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의의전가 (imputation)", 더 나아가서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의 개념까지 바꾸어 버림으로서 오늘날 문제를 일으키고있는 "톰 라이트의 새관점(New Perspective on Paul)"과 "노먼 쉐퍼드의 후예들로부터 시작된 페드럴비전(Federal Vision)"과 같이 양상이 이미 200여년 전에도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5. 프린스턴 신학에 대한 잘못된 역사 해석


칼빈주의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프린스턴의 초대학장이었던 아키발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의 도덕 철학에 대한 입장은 많은 신학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프린스턴의 두번째 학장이었던 찰스핫지의 칼빈주의는 표면적으로는 도덕 철학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아키발드 알렉산더와 갈등을 빚는 것과 같이 보인다.

심지어는 프린스턴이 칼빈주의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였다고 결론 내림으로서 현대에 들어와서 재조명되기 시작한 "행위 언약의 Republication 교리"에 대하여 제동을 걸기도 한다.



6. 모세언약에 대한 재조명


이 글의 주요 주제는 "모세 언약에서 볼 수 있는 행위와 은혜(Works and Grace in the Mosaic Covenant)"에 관한 내용이 중심이 되어 현대에 와서 재조명되고 있는  Republication 교리가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린스턴 신학에서 이미 견고히 자리를 잡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기 위하여 여러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모세 언약을 재조명하는 글을 모아서 발간한 책이 P&R Publishing에서 발간된 "The Law is Not of Faith."다.

이책의 출간 배경에는 톰 라이트의 새관점을 비롯하여 노먼 쉐퍼드 (Norman Shepherd)의 후예들로부터 시작된 페더럴비전 (Federal Vision), 심지어는 신칼빈주의라고 불리우는 화란개혁주의와 이들의 영향을 받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교회 형태로서의 이머징미셔널 처치에서 모세 언약에 대한 변형된 해석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데럴 허트 (Darryl. G. Hart)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초대학장이었던 아키발드 알렉산더와 그의 수제자이면서 두번째 학장이었던 찰스 핫지의 신학이 서로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임을 설명하는 글을 주제로하여  "The Law is Not of Faith."의 한 부분을 장식한다.

이는 현대신학자들이 모세 언약을 재해석하면서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근거로  알렉산더와 핫지의 충돌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 D. H. Meyer가 제기한 알렉산더의 문제점과 프린스턴의 과제


1. 칼빈주의와 상반되는 도덕학을 구축했다.


메이어에 의하면 개신교의 윤리적 견해에 대한 발전에서의  알렉산더의 공헌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계몽주의에서의 도덕 철학의 지적인  취약점은 제쳐 놓더라도 바로 거기에 도덕학을 구축(construction of science of moral)한다는 것은 칼빈주의와 상반될 수 밖에 없다.

개혁주의에서의 경건과 새로운 철학의 요구조건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에드워즈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우선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 철학자들은 (에드워즈와는 대조적으로)인간을, 도덕적 정부 안에 있는 시민으로서, 의무를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는 도덕적 수행자로 간주한다.


(여기서 에드워즈의 칼빈주의와 도덕철학자들의 대립을 볼 수 있는데 칼빈주의자인 알렉산더가 대립 관계없이는 도덕과 칼빈주의를 병행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D.G.Hart는 에드워즈와 그 후예들로 구성된 뉴잉글랜드의 신학이 알렉산더의 칼빈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고있다.)


2. 영혼의 상태와 경건의 표현의 대립관계.


에드워즈는 인간의 영혼(마음)을, "심각한 두려움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접근하는데 반하여 미국의 도덕 철학자들은 모든 이들의 경건한 표현은 (마음의 생각이 경험적 질문을 위한 것이라면) 명쾌한 분석을 위한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칼빈주의와 도덕 철학자들은 대조적일 수 밖에 없는데 알렉산더는 도덕과 칼빈주의를 병행시키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3. 타락한 철학과의 무리한 타협


신실한 칼빈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심각할 정도로 손상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알렉산더의 도덕학에 대한 칼빈주의적 접근은 칼빈주의를 타락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4. 의지와 교리의 조합의 실패


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알렉산더의 힘겨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부패성을 자신들의 도덕적인 생각에 접합시킨다는 개혁주의적 조합에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첫번째 사고 방식은 직관을 우선(intuitive first principle)으로 하고 있기에 이로 인한 인간의 자유로운 행동방식으로 말미암아 신학적 교리에 어떠한 손상이 가해지더라도 의지를  속박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뛰어난 미국의 도덕 철학자들 가운데는 보기 힘든 칼빈주의자이지만 알렉산더는 더 많은 것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5. 인간의 부패성의 원인 분석 실패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죄인을 그 자신의 부패성에 고정시키는 것(rivet the sinner to his own depravity)과 같이 더 이상 원인과 결과의 논리로 접근해서도 안되고 더군다나 인간의 성품과 은혜 사이의 부조화로 생긴 것이라고 말하여도 안된다.

대신에 도덕 철학자들은 사람들의 도덕적 특성( man's moral constitution)들을 파악하고 있는데(이러한 도덕적 특성은) 적절한 훈련과 교육을 필요로 하는 지적이고 영향력 있고 활동적인 능력인 것이라고 말한다.


( Meyer는 알렉산더가 지식이 부족한 칼빈주의자여서 양립할 수 없는 칼빈주의 행동방식을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Meyer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능력은 알렉산더가 말하는 것과 같이 칼빈주의적 접근 방식이 아닌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인간의 내재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Meyer의 이러한 분석에서의 오류는  알렉산더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요구되는 도덕에 대한 자연법적 접근을 구원과 연결되는 칼빈주의적 접근과 구별시키고 있는데 반하여 Meyer는 알렉산더의 구원론의 영역을 자연법에 속하여 있는 도덕법의 영역과 혼합하여 분석하고있기 때문이다.)


Darryl G. Hart의 결론


Meyer는 잘못된 가정으로 인한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오류를 범했다.

Meyer의 관점에서는 알렉산더의 가장 큰 약점이 도덕적 책임(moral fesponsibility)과 도덕적 수행(moral agency)을  서로 연결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이성적 원함(rational desire)"과 "취향 혹은 열심(appitites or passion)"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Meyer의 논제는 신뢰가 떨어진다.

이렇게 Meyer가 알렉산더에 대하여 잘못 가정하고 있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도덕적 판단의 기초를 형성하는 숨겨진 기질이 있는데,  이 때문에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하게 도덕적으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알렉산더가) 착한 칼빈주의자라는 것이다.


Meyer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기질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이 경우 알렉산더는 도덕적 행함이 없는 도덕적 책임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로서 알렉산더는 스스로 모순을 말하고있는 것이다- 혹은 인간이 의무에 의하여 자신의 숨겨질 기질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을 수 있는데 ,(알렉산더가 이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이는 신학적으로 펠라기우스주의나 완벽주의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 여기서 Meyer는 알렉산더의 칼빈주의 해석과 도덕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칼빈주의자인 알렉산더를 자신의 모순에 빠져서 펠라기우스주의로 가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Meyer는 알렉산더만이 이러한 어려움에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양심에 호소하는 도덕 철학적 접근은 모든 종류의 정통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프린스턴의 딜레마


알렉산더가 "Outlines of Moral Science"에서 언급한 것처럼 프린스턴이 (자신들의 도덕학에 대한 칼빈주의적 입장을) 일반적인 혹은 보통의 도덕적 감각에 호소를 한다는 것은 신학교의 신학자 입장에서는 심각한 취약점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처음의 죄 (original sin)와 전적인 부패 (total depravity)에 대한 개혁주의의 가르침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역사적 칼빈주의의 입장에 타협할 수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프린스턴이, 계몽주의 철학에 의존하면서 세속적인 도덕에 잠기에 있는 미국의 상태에 백기를 들 수도 없는 것이다.


전통적 도덕 철학에 공감하였던 Guelzo마져도 다음과 같이 칼빈주의자의 도덕 철학의 어려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 Archibald Alexander나 James McCosh와 같은 프린스턴의 대표적인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도덕 철학의 목적(for the purpose of moral philosophy)이라면, 자신들이 신학적으로 말할 때(theologically speaking)는 믿을 수 없는 자기 증거(self-evident)나 직관적 자유(intuited freedom)를 충분히 믿을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다."


3. 알렉산더의 질문과 답들


D. H. Meyer의 알렉산더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비판 가운데서도 알렉산더는 나름대로 도덕 철학과 관련된 문제들을 칼빈주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변증법적으로 풀어나가고있다.



1. 양심(conscience) 과 선(good)의 관계성에 대하여


질문;

"덕에 대한 관념이 단순히 도덕적 양심에 의존한다면, 혹은 선이 개인의 양심에 관계없이 존재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악에 참여할 수 있는가?"


답;

이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법이 없이도 자신의 양심적 판단에 따라 행동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경우 알렉산더는  각 사람이 자신의 안에서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을 찾는 시도를 포기하게 되며 인간의 부패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또한 죄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아름답고 귀한 것에 관하여 마음의 눈을 어둡게 만든다고 말한다.


결론;

행함은 두 가지를 만족 시킬 때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마음에서 옳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의 법에 적합해야 한다.


2. 무신론자에게서의 선에 관하여


질문;

무신론자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덕적 의무를 느껴야 할 필요성을 상실한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답;

이러한 질문은 알렉산더로 하여금, 법을 만든 분을 알던 모르던 모든 사람이 도덕적 의무를 가져야만 한다는 긴급성을 주장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여기에 대하여 알렉산더는 " 우리는 내면에 새겨진 법을 가지고 있기에, 이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벗어 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즉 " 사람이 도덕적 감각에서 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억압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마음에 새겨진 법을 없앨 수 없으며, 도덕적으로 잘못된 어떠한 행동에 대한 판단을 없앨 수 없으며, 자신이  법을 어기는 죄를 범하였을 때 양심의 찔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론;

무신론자의 도덕적 능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보다도 더 손상된 것은 아니다.




4. 알렉산더와 도덕법


알렉산더의 주장(50)


1. 모든 사람은 도덕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충분한 이성적 판단 능력이 있기에 누구나 도덕적 실행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 이러한 의식은 (신앙의 유무에 관계없이) 도덕 교육을 받기 이전부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행함(free will and moral agency)


인간의 도덕적 실행에 대한 알렉산더의 접근방식의 본질적 내용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devine sovereignty and human responsibility)" 양쪽을 강조하는 것이다. 칼빈주의인 알렉산더가 이 주제에 대하여 특히 주의를 기울이고있는 것은 필연과 자유 사이(relationship between necessity and liberty)의 관계에 대하여 잘못된  이해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천사의 경우는 필연에 의하지만 또한 자유를 가지고 있듯이 하나님의 행동 방식도 필연에 의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유로우신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행함(free agency)은 도덕적 행동(moral action)에 필수적인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자유는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섭리(God's providential control)에 대하여 타협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행할 자유를 가졌지만 이는 자신의 능력에 제한되어있는 것이다.


3. 도덕적 행함은 구원의 능력과 구분 되어야 한다.


비록 인간에게 선을 행할 도덕적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 시킬 만한 구원의 능력은 없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도덕은 자연법의 범주에 속하여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요구되는 개혁주의 구원론과는 서로 구분되는 영역에 있다.


알렉산더의 비판


1. 덕(virtue) 개념의 수용을 거부한다.


덕이란 " 이성적인 마음(rational mind)에 좋다고 생각되는 어떤 행동의 특성"을 말한다.

반면에 악(vice)은 "체계가 잘 갖추어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마음으로 볼 때 악(evil)한 것"이다.

이러한 덕에 대한 정의에 대하여 논쟁한다는 것은 도덕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우매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Thomas Hobbes(1588-1679 영국철학자)는 덕과 악 사이의 자연적인 구분을 부정한다.

Bernard Mandeville(1670-1733 Anglo-Dutch philosopher)은 덕을 추구하는 자체를 근본적으로 위선적(basically hypocritical)이라고 본다.

Archbishop William Paley(1743-1805)는 덕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데서 나온다고 본다.


알렉산더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예들이나  Samuel Hopkins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New Divinity에서의 "사심이 없는 선행(disinterested benevolence)"이나 "일반적인 존재(being of general)"라는 개념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꺼려한다.


알렉산더는 스코틀랜드의 도덕 철학자(Scottish moral philosopher)인 Adam Smith가 덕이 불규칙적이고 변덕스러운 학설이기 때문에 도덕적 감정(moral sentiment)은 연민(sympathy)에서 유래한다고 말하며 "덕(virtue)이 하나님의 의지에 순응 되는 정도의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에 대하여 분명히 거부를 한다.

알렉산더의 신학적 확신은 그의 도덕에 관한 철학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70)


2.  사심없는 선행(disinterest benevolence)에 대한 알렉산더의 비판


알렉산더는 "사심없는 선행(disinterest benevolence)"을 최고의 덕목이라고 강조하는 "잉글랜드의 도덕학(New England version of moral theology)"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하여 웨일렌드(Wayland: "The Elements of Moral Science"의 저자)를 인용하고 있다.


알렉산더는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와 뉴디비니티(the New Divinity)로 모인 그의 후예들이 "행복을 최고의 궁극적 선(happiness the highest and Ultimate good)"이라고 강조하는 학파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한다.


덕과 거룩에 있어서 필수적 요소로서 "사심없는 선행(disinterest benevolence)"을 강조하는 이들은 거룩이 죄에 적합하다고 하는 유일한 이유는, 사심없는 선행이 행복을 제공해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거룩을 추구하여야 하는데 이에 가장 적합한 행동방식은 "사심없는 선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최고의 방법론으로 "사심없는 행동"을 강조하는 것는 것은 "속죄에 관한 도덕 통치"의 구체적 행동 방식으로 표현되고있는 것이다. 최근 신칼빈주의에서 최고의 행복을 추구하는 "Christian Hedonism"과 연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알렉산더는 이러한  "사심없는 선행(disinterest benevolence)"의 개념이 장로교에 들어와서 신학의 체계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에 대하여 매우 슬퍼하였다.(70)


3. 알렉산더가 말하는 올바른 도덕론 (correct moral theory)


a. 행동의 도덕성은 오직, 흔히들 양심이라고 칭하는, "도덕적 기능의 인식(perception of a moral faculty)"에 의하여 알 수 있다.


b. 이러한 도덕적 기능이 없이는 짐승 이상의 도덕적 특성에 대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c.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은 이성에 의하여 도덕적으로 계산하여 나오는 것이 아니다.


d.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은,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혹은 일시적이건 영구적이건 관계없이, 행동의 결과와 상관없는 "도덕적 기능의 판단(judgment of moral faculty)" 에 의한 것이다.


4. 알렉산더의 도덕학에 대한 결론


a. 알렉산더는 도덕 철학의 특정 체계(specific system of moral philosophy)가 개혁 정통주의(Reformed orthodoxy)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b. 알렉산더도 자신의 개혁주의적 확신이 드러나도록  도덕학을 조심스럽게 다듬었음을 자신의 논평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c. 이 경우에 있어서 알렉산더와 프린스턴 신학은, 윤리학과 칼빈 신학의 본질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윤리와 신학 사이의 관계에서의 형식(formally with regar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ethics and theology)에 있어서 조차 뉴잉글랜드 신학과 대조적 위치에 있었다.


d. 알렉산더는 뉴잉글랜드 신학이, 신학과 도덕 철학(theology and it's moral philosophy)에 있어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덕에 대한 입장의 특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e. 프린스턴 신학은 뉴잉글랜드 신학과는 대조적으로, 신학적 시스템이 도덕학을 다듬어서 윤리로 하여금, 창조의 도덕적 질서에 관한 진실에 적합하면서 또한 성경에 나타난 구속에 적합 하도록 하였다.


f. 프린스턴의 신학이 윤리학에 상반된다고 하는 주장들은, 학교에서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대의 신학자들이 미국의 칼빈주의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부패에 대한 개혁주의적  관점에서의 율법과 은혜를 오해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윤리, 도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잉글랜드 신학  (0) 2015.02.03
프린스턴 신학과 도덕 통치론  (0) 2015.02.03
프린스턴 신학과 도덕법  (0) 2015.02.02
찰스 핫지와 도덕법  (0) 2015.02.02
posted by Wonho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