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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개혁주의/카이퍼 2015. 12. 13. 17:43

세상을 기독교화 한다고?

CHRISTIANIZING THE WORLD?

 

번역   김원호(dent4834@hanmail.net)

 

(데이비드 엥겔스마 교수)

By Professor David J. Engelsma

 

These writings originally appeared in Beacon Lights magazine. It was a six part series that ran from March 2013- August 2013.


 

역자 서론

 

데이비드 엥겔스마의 "세상을 기독교화 한다고(Christianizing world?)"는 그가 2013. 3-2013. 8까지 개신개혁교회(PRC) 젊은이들의 잡지인 Beacon Lights magazine에 6회에 걸쳐서 연재한 것이다.

 

연재 내용은 주로 카이퍼의 일반은혜를 근거로 하는 기독개혁교회(CRC)의 세상과 문화를 변화시키고자하는 운동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 PRC의 분리와 탄생

 

북미의 개신개혁교회(Protestant Reformed church:PRC)가 1924년 기독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CRC)로부터 분리되었던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카이퍼의 일반은혜에 대한 수용 여부였다.

 

PRC는 1924년 카이퍼의 일반은혜 이론이 북미기독개혁교회(The Christian Reformed Churches in North America)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었을 때 카이퍼의 일반은혜 개념에 반대하는 헤르만 훅세마(Herman Hoeksema)를 중심으로 분리된 교단이다.

 

데이비드 엥겔스마(David. J. Engelsma)는 개신개혁교회(Protestant Reformed church)에 소속된 목회자로서 이번 글을 통하여 화란개혁주의에 속하여 있는 기독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가 추구하는 "세상을 기독교화하자"라는 주제가 과연 성경적 근거가 있는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엥겔스마는 이번의 강좌를 통하여 드러난 문제들의 근원이 1924년 CRC가 카이퍼의 일반은혜 교리를

수용하여 확대 발전시킨 것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PRC가 CRC에 대하여 얼마나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있다.

 

● 시대적 요구

 

아브라함 카이퍼 번역협회(Abraham Kuyper Translation Society)에서는 Lexham Press를 통하여 조만간 8가지 핵심 주제로 정리된 아브라함 카이퍼의 저서를 총 12권의 양장본으로 발행한다. 이 가운데는 이전에 영어로 접할 수 없었던 것들이 포함되어있다.

 

엥겔스마는  카이퍼 저서들의 번역 작업에 카톨릭 재단이 관여 되어있음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엥겔스마의 강연 "Kuyper's commom grace, christianizing culture"중에서)

 

기독교가 사회의 변방으로 소외되고 급격한 교인 수의 감소로 인하여 기독교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기독교의 사회 참여에 부응하기 위한 대안으로 카이퍼의 일반은혜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이미 카이퍼의 일반은혜는 CRC와 칼빈신학교를 중심으로한 화란개혁주의의 문화변혁 운동에 많은 원동력을 제공해 주고있지만 1924년 카이퍼의 일반은혜 개념으로 인하여 분리를 맛보았던 PRC의 저항에 다시 한번 더 직면하게 되었다.

 

엥겔스마의  "세상을 기독교화 한다고(Christianizing world?)"는 PRC의 저항이 어느 정도 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카이퍼의 일반은혜

 

엥겔스마는 이번 글의 주제를 카이퍼의 일반은혜와 연계시키고 있다.

 

비록 제목은 "세상을 기독교화 한다고(Christianizing world?)"이지만 CRC와 칼빈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운동의 근거를 카이퍼의 일반은혜에 두고 있다.

 

신학 이론을 비평하는 일반적인 신학자들의 접근 방식과 달리 엥겔스마는 강연 내용을 정리한 관계로 인하여 단순하게 성경적 근거와 경험적 근거를 통하여 일반은혜의 문제점을 지적해 나간다.

 

엥겔스마는 카이퍼의 일반은혜가 칼빈주의와는 관계없는 개념이라고말한다.

 

급기야는 카이퍼의 일반은혜 개념이 세상 짐승의 나라를 세우는 운동의 근거를 제공 한다고 하면서까지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세상을 기독교화하자는 프로젝트인 카이퍼의 일반은혜 프로젝트가 붕괴될 때 하늘의 성도들이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다.

 

● 문화칼빈주의: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칼빈주의가 전통적 칼빈주의와 구별되는 가장 큰 점은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신칼빈주의자들은 소위 말하는 문화명령(창 1:28, 혹은 창조명령, 지배명령, 통치명령으로 불리우기도한다)을 대위임령만큼, 혹은 대위임령보다도 중요한 명령으로 여기고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주된 사명감과 관심은, 전도와 선교의 근거로 삼는 대위임령(마28:16-20)보다는 소위 말하는 문화명령(창 1:28)의 실행에 있다.

 

문화명령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카이퍼의 일반은혜가 그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준다면, 기독교세계관운동은 문화변혁운동의 근거와 방법론을 제시해준다.

 

엥겔스마의 "세상을 기독교화 한다고(Christianizing world?)"는 문화칼빈주의라고 할 수 있는 카이퍼의 신칼빈주의의 이론적 근거보다는 실천적 배경에 중점을 둔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 기독교세계관 운동

 

엥겔스마의 "세상을 기독교화 한다고(Christianizing world?)"에서는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신칼빈주의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칼빈주의의 기독교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알버트 월터스(Albert Wolters)의 저서 “창조 타락 구속(Creation Regained)”에서는 문화변혁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와 이론을 제시해주고있다.

 

알버트 월터스(Albert Wolters)는 자신의 저서 “창조 타락 구속(Creation Regained)”에서 미셔널 처치 운동을 하는 마이클 고힌과 함께 2005년 개정판을 내면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톰 라이트의 새관점 사상을 수용하고있음을 밝히고있다.

 

현 시대에 신칼빈주의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흘러가는 방향은 전통적 칼빈주의의 궤도를 벗어나 톰 라이트의 새관점 신학에 합류하는 경향을 보이고있다.

 

그 중의 한 예로서 리처드 미들턴(Richard Middleton)의 “새 하늘과 새 땅"이 화란개혁주의 기독교세계관의 이름으로 톰 라이트의 새관점 틀에서 저술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그동안 개혁신학의 뼈대를 이루고 있었던 언약 신학의 틀에서 행위 언약의 개념이 상실되어가고있는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혁주의 언약 신학은 처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행위 언약의 구조 안에서 대비시키면서 율법과 복음, 율법과 은혜라는 대비 구조로 전개되고있다.

 

문화 명령으로 해석되는 창 1:28은, 종말론적 축복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안식에 이르기까지, 아담에게 주어졌던 능동적 순종의 요구이었다.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즉 그리스도의 율법의 요구에 대한 완전한 순종은, 아담에게 요구되었던 능동적 순종(창 1:28)에 대한 충족이었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수동적 순종과 함께 신자에게 전가된 것이다.

 

율법은 아담에게 요구되었던 창 1:28의 능동적 순종의 요구가 재연(Republication)된 것이기에 행위 언얏의 범주에 속하여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교사로서의 은혜의 속성을 가지고있다.

 

문화변혁주의자들의 범주에 속하여있는 신칼빈주의자들과 새관점주의자들은 모세 언약에서의 행위 언약 속성을 철저히 배격하고있다.

 

행위 언약 개념은 언약 신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구조물이지만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도 신칼빈주의나 새관점과 마찬가지로 행위 언약의 개념을 배제하고있다.

 

선교적 교회, 즉 미셔널 처치는 행위 언약 개념을 배제하고 오직 은혜 언약만을 주장하는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서 출발되었다.

 

행위 언약 개념이 배제된 신학, 즉 신칼빈주의, 신정통주의, 톰 라이트의 새관점들은 문화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융합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칼빈 신학교의 마이클 고힌은 칼 바르트의 하나님 선교 개념의 미셔널 처치 운동과, 신칼빈주의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 그리고 톰 라이트의 새관점을 자연스럽게 융합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문화변혁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보편화시키고있다.

 

엥겔스마의 이번 비평은 마이클 고힌의 기독교세계관 운동에 적용해 볼 때 비교적 정확하게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엥겔스마의 "세상을 기독교화 한다고(Christianizing world?)"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엥겔스마의 염려에 덧붙인다면, 이제는 카이퍼의 신칼빈주의가 문화와 접목된 칼빈주의의  변질을 넘어서, 종교개혁 신앙고백을 부정하는 톰 라이트의 “바울에 관한 새관점"과의 접목되고있다는 염려와 더불어, 이러한 접목의 틀을 제공한 카이퍼의 이론적 근거의 문제점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 이원론적 사고:

 

엥겔스마의 전개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톰 라이트나 신칼빈주의에서 한결같이 비난하는 이원론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논리에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이라는 개념이 깔려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음녀 바벨론의 세계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분별력을 촉구하고 있다.

 

신칼빈주의 기독교세계관에서 결핍되어있는 사단의 세력과의 영적 전투 개념이 아직 그에게는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고있으며, 이를 단순히 이원론적 사고로 치부하는 것은 오히려 신칼빈주의의 영적 분별력의 결핍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두왕국

 

엥겔스마의 비판은 단지 화란 개혁주의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신칼빈주의가 톰 라이트의 새관점과 이머징 미셔널 처치와 손을 잡고 움직이는 One Kingdom개념에 반대하는 Escondido중심의 신학자들이 제시하고있는 "자연법과 두 나라(Natural Law and Two Kingdom)"개념 조차도 카이퍼의 일반은혜 개념을 수용하고있다는 면에서 엥겔스마는 "두 나라(Two Kingdom)" 개념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는다.(엥겔스마의 일반은혜 강연회에서)

(개인적으로는 엥겔스마보다는 오히려 자연법과 두 왕국 개념을 주장하는 David VanDrunen과 John Fesko가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화란개혁주의가 일반화된 현재의 상황과 또한 신칼빈주의에 대한 비평에 앞장서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WSCal)중심의 Escondido신학마져도, 카이퍼의 일반은혜를 수용하고있다고 비평하는 엥겔스마의 뿌리 깊은 일반은혜 개념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분명 많은 신학자들을 당혹케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전적 부패교리의 상실

 

칼빈주의의 5대 강령 가운데 첫 번째는 인간의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즉 전적인 무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전적인 부패는 아담의 죄가 전가된 것에 근거를 두고있지만 아담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이들이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수용하기는 쉽지가 않다.

 

카이퍼의 일반은혜 개념에서는 인간의 전적 부패, 즉 전적인 무능력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힘들며 엥겔스마는 카이퍼의 일반은혜를 비판하는 강연에서 카이퍼가 인간의 전적 부패를 부정하고있음을 지적한다.

 

J. Glenn Friesen은 카이퍼와 도예베르트의 사상의 뿌리가 카톨릭 철학자 Franz von Baader(1765-1841)의 기독교 신지학(Christian Theosophy)에 있음을 밝힘으로서 카이퍼의 문화에 관한 사상과 개념들이 과연 개혁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한다

 

J. Glenn Friesen이 밝힌대로(여기참조) 카이퍼의 사상의 뿌리가 카톨릭 철학자 Franz von Baader의 신지학(Theosophy)에 있다면 이는 인간의 철학에 의하여 시작된 논리로서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무능의 개념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까지나 자연법의 차원 안에 한정되어있으며 구속을 위한 특별법에까지 연결되지 않지만 카이퍼의 일반은혜 개념은 구속과 관계된 하나님의 특별법의 영역으로까지 연계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엥겔스마의 "세상을 기독교화 한다고(Christianizing world?)"에서의 비판은 카이퍼의 일반은혜를 근거로 하는 인간의 성취 능력과 방향이 구속의 영역에까지 연결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극단적 칼빈주의(hypercalvinism)

 

PRC 소속인 엥겔스마의 CRC에 대한 비판과 공격으로 인하여 문화 칼빈주의자들은 엥겔스마를 극단적 칼빈주의자(hypercalvinist)라고 비난한다.

 

엥겔스마가 속하여 있는 PRC는 카이퍼의 일반은혜에 대한 거부에서 시작되었으며 일반은혜 개념을 수용한 CRC와 대립관계를 유지하게되면서 엥겔스마 이전 부터 CRC 입장에서는 PRC의 사람들을 극단적 칼빈주의자(hypercalvinist)라고 비난하여왔었다.

 

원래의 극단적 칼빈주의는 알미니우스의 오류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지만 John Murray는 극단적 칼빈주의를 가리켜 알미니우스적인 태도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태도를 악(evil)으로 규정하고 있다.(최홍석, 존 머리를 통해 본 기독교 복음선포 53)

 

CRC입장에서 볼 때 엥겔스마는 세상과 문화에 대하여 배타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에 극단적칼빈주의자로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엥겔스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엥겔스마를 극단적 칼빈주의자(hypercalvinist)라고 칭하는 것은 옳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번째로, 엥겔스마는 카이퍼의 일반은총 개념이 칼빈의 5대 강령 중의 첫번째인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함을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John Murray는 극단적 칼빈주의를 알미니우스와 마찬가지로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만 존 머레이의 신학에는 항상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John Murray 입장에서 본다면 일차적으로 인간의 전적부패를 부정하는 카이퍼의 일반은혜가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엥겔스마의 비판은 구원론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극단적 칼빈주의(hypercalvinism)논쟁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구원에 관한 것이다.

 

엥겔스마가 문화칼빈주의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구원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신론과 인간론에 대한 것이다.

 

문화라는 주제는 "하나님의 의"라는 신론을 바탕으로한  문화 명령을 위한 인간의 책임으로, 이미 구원론이라는 주제를 떠난 상태에서 논하고 있는 것이다.

 

엥겔스마는 일반은혜 반론은, 이를 다시 구원론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관점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엥겔스마의 주장은, 극단적칼빈주의의 입장을 보여주기보다는, 일반은혜를 근거로하여 이 세상을 기독교화함으로서 이 세상과 자신을 구원하는 능력이 인간 안에 내재하여있다는 암묵적인 자기의를 비판하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존 머레이도 인간이 드러내는 가장 큰 악을 "자기의 (self-righteousness)라고 말하고있다.

 

엥겔스마의 문화에 대한 예민함은, 인간의 책임을 외면하는 극단적 칼빈주의와 같은 복음 전도의 회피보다는, 문화변혁 운동을 통하여 구원을 선행하는 자기의에 대한 경계가 앞선 것이다.

 

또한 회중적 교회 중심의 하나님 나라 개념을 가지고 있는 엥겔스마 입장에서는, 극단적 칼빈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복음 전도의 폐쇄성이 아니라,  우주적 교회론의 하나님 나라 개념을 가지고 있는 문화 칼빈주의자들에 대한 교회론의 붕괴에 대한 우려가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엥겔스마의 논리는, 극단적이기보다는 카이퍼가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전적인 무능력에 대한 칼빈주의의 기본 교리에 충실한 것이며,  동시에 삶의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하나님의 주권 못지않게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에큐메니컬 운동

 

엥겔스마는 카이퍼의 일반은혜 개념이 에큐메니컬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주는 것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한다.

 

그는 카이퍼의 일반은혜에 대한 강연에서 카이퍼의 일반은혜의 번역사업에 카톨릭 제단이 관여된 것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한다.

 

카이퍼의 일반은혜 이론은 타교단과의 장벽은 물론 교회의 일반 사회에 대한 장벽을 넘어서는 것이며, 더 나아가 모든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영역임을 선포하며, 만물의 구속을 말하는 우주적 교회론의 근거를 제공해주고있다.

 

기독교 2000년 동안에 교회의 분열은 구원론에 관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 인간의 책임에 관한 해석의 차이로 인한 것이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라는 신론 중심의 신학은 이제까지의 교단의 분열을 아우르기에 충분한 새로운 도전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있다.

 

톰 라이트에 의하면, 어거스틴 이후의 기독교의 분열은 개인적 회심에 의한 구원론 중심에서 출발한 신학이, 개인적 회심에서 출발된 루터의 구원론적 신학에 의하여 종교개혁이 이루어졌으며, 종교개혁 이후의 끊임없는 교회의 분열의 배경에는 구원론 중심의 신학이 자리를 잡고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신론 중심의 새관점의 정당화되고있는 가운데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구원의 최종 종착지로서의 우주적 교회론을 향하고있다.

 

에큐메니칼을 추구하는 WCC의 교회론인 미셔널 처치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문화를 통한 사회변혁이라는 카이퍼의 문화에 대한 관점과 맥락을 같이하고있다.

 

톰 라이트의 "바울에 관한 새관점"과 알버트 월터스의 "창조 타락 구속"으로 대변되는 신칼빈주의 기독교세계관, 그리고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선교를 기초로 한 이머징 미셔널 처치의 대연합(great convergency)은 에큐메니컬의 성취는 물론 기독교의 사회 문화와의 접목을 추진하여 "세상을 기독교화(christianizing world)"하는데  하나가 되고있다.

 

엥겔스마는 비록 신칼빈주의의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언급이 없고 이머징미셔널 처치의 사화변혁 운동에 대하여 언급을 하지 않고있지만 엥겔스마의 "세상을 기독교화(christianizing world)"한다는 것에 대한 비평은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의 초창기 선교사들은?

 

100여년 전의 한국에 파송되었던 선교사들의 의식구조 가운데는 카이퍼의 일반은혜 개념이 없었다.

그들의 선교활동은 이미 카이퍼의 일반은혜 개념 이전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선교사들은 하나같이 문화 활동에 참여하였고 그로 인하여 이조500년의 뿌리 깊었던 유교적 문화를 기독교적 문화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신칼빈주의의 문화명령의 개념과 문화변혁, 문화물의 천국보존 개념들이 아니라 오직 마28:19-20의 대위임령에 의한 것이었다.

 

100여년 전의 평양 대부흥도 문화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사람의 인위적인 변혁운동이 아닌 오직 성령 사역의 열매로 인한 회개 운동이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부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소위 말하는 문화명령의 실행이 아니라 올바른  교리를 기초로 한 참된 복음의 회복과 이로 인한 성령의 역사와 열매로서의 회개가 시작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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