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읽고서
김원호(dent4834@hanmail.net)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통하여 전해주는 방위량 선교사와 한부선 선교사의 기록은 평양 대부흥과 신사참배로 인한 수난들과 공산치하에서의 기독교인들의 수난사를 다루고있다.
이 책은 몇 가지 부차적인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형성과정에서의 주된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한국의 장로교회를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피값으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현재의 교회의 상황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복음이 단순히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압도하는 능력임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되었다.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는 2부로 나뉘어져있다.
1부에서는 1901년에 조선에 도착한 방위량 선교사가 평양 대부흥이 있기까지 보고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있다.
2부에서는 방위량 선교사의 사위인 한부선 선교사가 일제 말기에 있었던 신사참배와 관련된 일제에 의한 성도들의 희생과 이후 공산주의자들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성도들의 희생을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면서 소개하고있다.
방위량 선교사가 처음 부산에 도착하였을 때 묘사한 조선의 모습은 조선의 낙후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고있다.
이미 일찌감치 문호를 개방하여 세력을 키운 일본에게 조선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일본에 의하여 무장 해제를 당한 조선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마찬가지로 아무 힘을 쓸 수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도착한 선교사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조선이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도피처였다.
일본은 조선을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대륙으로 이어지는 철로를 건설하였지만 이는 명백히 중국 침략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 적절하게 선교사들이 복음을 신속하게 전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의 전 세계적인 열강의 식민지 열풍으로 러시아도 조선을 침략하게된다.
일본군이 아니었다면 당시 미약한 조선으로서는 러시아의 군대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을 것이고 조선은 동구의 러시아 연방 중의 하나와 같이 러시아의 간섭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을 방어하기 위하여 러시아와 전쟁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이 조선을 장악하고자 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이 러시아를 물리치고나선 일본으로 돌아갈 줄로만 알고있었다.
러시아군을 물리친 일본군은 철수를 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조선을 통치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1907년 조선인들은 철수를 하지 않고 조선을 장악한 일본 군인들로 인하여 국권을 상실한 절망감에 압도되어있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은 성령의 역사하심이었지만 국권을 상실한 극도의 좌절감에 빠진 조선인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셨던 것이다
2007년에 시도되었던 again1907이 실패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2007년의 상황이 100년 전과 같이 상실한 마음의 마른 장작과도 같지 않았으며 교회 확장이라는 욕심에 흠뻑 젖어있는 마음에 불을 붙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욕심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일으키려던 부흥은 결코 성령께서도 간섭하시지도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부흥주의의 부작용만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방위량 선교사가 전하는 평양 대부흥은 국권의 상실과 좌절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복된 시간이었다.
극도의 상실감 만큼이나 하나님을 경험하는 놀라움은 극에 달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이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죄를 보기 시작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이들은 죄를 토해내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광을 담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흥의 기간동안 경험한 하나님의 영광은 국가를 잃은 서러움과 비통함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며 이는 수천년의 한반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험된 놀랍고 두려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평양 대부흥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의 강림하심과 같이 이제 한반도에서도 성령께서 항상 함께 계시겠다는 표징이었다.
평양 대부흥은 이제껏 중국을 의존하면서 조선의 자존감을 지켜왔던 성리학과 유교 의존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함께 하심 가운데 새로운 역사를 쓰게될 한반도에서의 기독교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불길이었다.
평양 대부흥과 함께 시작된 한반도의 기독교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03년 선교사의 자녀로 조선에서 태어나 젊어서 일제를 경험했던 한부선 선교사가 전하는 신사참배의 실상은 이제 갓 태동하기 시작한 조선의 기독교가 얼마나 혹독한 시련을 견디어 왔는지를 있는 그대로 전해주고있다.
신사참배라는 시련은 조선인들이 받은 복음이 지식을 넘어서 능력을 점검하는 혹독한 시험의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신사참배의 시련을 견뎌내어야만 했던 성도들의 어려움은 이 시대 신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없는 혹독한 시험의 과정이었으며 이 시련의 과정을 통하여 초기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보여준 복음의 능력은 단순한 이론 이상의 삶의 능력이었다.
신사참배와 공산주의자들의 혹독한 시련과 그로 인한 순교의 피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견고히 설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
평양 대부흥과 일제의 핍박,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를 전하는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읽으면서 환란, 고통, 죄, 용서, 부흥에 대하여 읽고 느낀 것들을 다음과 같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환란에 대하여)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 통치는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다.
방위량 선교사가 조선에 도착하였던 1901년의 조선의 상황에서는 조선의 자랑스러움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방위량 선교사가 처음 도착하여 보았던 부산에서의 충격적인 모습은 오랜 시간 배멀미를 하고 도착한 방위량 선교사로하여금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100여년 전의 조선의 모습은 외적인 초라함은 둘째치고 나라에 대한 통치권을 서서히 잃어가고있던 꺼져가는 촛불과도 같이 국민들의 마음도 한없이 무너져만 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마치 아프리카 들판에서 먹이 전쟁을 벌이는 야수들 사이에서 벌벌 떠는 사슴과도 같은 연약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미 무장 해제를 당하여 아무 힘이 없었기에 조선 반도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철수하지 않고 남아 있으려던 사실은 마치 야수가 먹이를 먹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같았다.
2007년 평양대부흥의 밑바탕에는 철수하지 않는 일본군의 통치가 시작 된 것으로 인한 한민족의 상실한 절망감이 마음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있었다.
구한 말에 선교사들이 전하였던 복음은 환란과 상실로 인하여 갈아 엎어진 마음의 밭에 뿌려진 씨앗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믿고 의지하였던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배함으로 인하여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던 조선은 일제의 압박으로 인하여 구시대의 전통을 벗어버리고 저항과 체면이 상실된 채 선교사들을 통하여 전해지는 복음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국권의 상실이라는 환란은 한편으로 이조 500년의 근간을 이루고있던 인본주의적 성리학을 중심으로한 유교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싸인이었다.
더 나아가 평양을 중심으로 견고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복음은 한국전쟁이라는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전국 각지의 지역 텃세를 넘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림으로서 환란 가운데서 또 다른 형태의 복음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악은 절대로 정당화되거나 합리화 될 수 없지만 구한 말부터 시작된 환란이라는 악으로 인하여 짧은 시간에 복음이 견고히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코 가볍지 않은 환란은 오랜 시간동안 민족과 국가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뿌리 깊은 악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축복의 통로를 여는 수단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소유한 복음은 수많은 선배들의 피와 고통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기에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귀한 보배를 자신들의 이 생에서의 욕심과 맞바꿈으로서 선배들의 피와 고통으로 이룬 결실들을 값없이 내다버리고있지만 하나님이 환란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이 땅에 복음을 심으셨기에 성도의 몸부림은 지속 되어야만 할 것이다.
(고통에 대하여)
방위량 선교사와 한부선 선교사가 전하는 기독교인들의 순교와 수난은 고통스러웠던 상황들에 대한 기록들이었지만 이러한 고통의 시간들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과정이었기에 이렇게 책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기에 육체의 고통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으며 육체의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고통이었지만 순교자들이 보여준 믿음의 모습은 하나같이 영원한 생명이 죽음을 넘어서는 것이었음을 증거하고있다.
신사참배에 대한 거부와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로 인한 순교의 고통은 선교사들이 뿌린 씨앗의 결실이었으며 이후에 한국 교회가 맺을 결실들의 원동력이 되었다.
순교자들은 배교로 인한 고통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함으로서 천상의 기쁨이 육체의 고통을 넘어서는 것이었음을 보여주었다.
평양 대부흥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복음은 인간적인 면에서는 결코 기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복음을 받아들였던 이들은 죄의 문제를 직시하여야만 했고 자신의 죄를 직시한 이들은 더욱 비통함에 빠질 수밖에 없다.
평양 대부흥을 겪으면서 부흥에 참여하였던 이들에게는 일제의 압제등 외부의 문제들보다는 자신들의 내면의 죄에 대한 문제가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고통은 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며 평양 대부흥은 이것을 보여주었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부흥에 참여한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내면의 죄에 대하여 별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내면의 죄를 외면 할 수 없었고 죄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스스로 죄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위안을 삼는다.
그냥 죄인으로 머무르고자한다면 내면의 죄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식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의인으로 살기로 작정하였다면 내면의 본질적 죄와 죄의 결과물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평양 대부흥에서 보여준 죄를 회개하는 행위는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신학에서 회개를 구원의 선행 조건으로 말하고있는 것과는 달리 평양 대부흥에서 보여주었던 회개의 모습들은 구원받은 자의 열매로서 나오는 행위들이었다,
평양대부흥에서의 죄에 대한 고백과 회개와 비통함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은 자들에게서 결과적으로 나타난 행위였으며 이는 그들 안에 성령의 내주하심을 증거하는 성령의 열매였던 것이다.
평양 대부흥은 진정으로 고통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질의 부족함이나 외부의 압력이나 자존감의 상실은 부흥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더 이상 고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자신들의 내면의 죄였다.
현재 우리가 흔히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주로 외부의 환경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우리의 영적인 감각이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부흥을 경험한 이들이 고통스러워했던 죄에 대한 인식이 하나님의 복된 선물이었다면 역으로 현재의 우리들의 영적린 무감각은 하나님이 축복을 거두어가신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바울이 사망의 몸이라고 고백한 육체를 가지고있기에 고통에서 자유 할 수 없다.
평양 대부흥은 죄에 대한 고통의 시작이었으며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는 동안에는 결코 죄에 대한 고통에서 자유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있다.
신사참배 거부로 인한 혹독한 고문과 순교,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희생은 영적인 고통의 확장이었다.
하지만 영적인 고통은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내적인 평안으로 완성되어진다.
평양 대부흥에서 죄에 대한 고통에는 신사참배와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을 넘어서기 위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었다.
죄를 고백하였던 이들은 죄가 드러남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평안을 경험 할 수 있었다.
개인을 넘어서 구한 말 조선의 국가적 고통도 마찬가지로 조선의 치부를 드러내는 고통의 시간들이었지만 동시에 국가적 부흥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었다.
일제의 압제로 인하여 비록 외적으로는 무너짐의 고통이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부흥으로 조선을 하나님 앞에 견고하게 서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해방 후에 지속된 공산주의자들의 핍박과 한국전쟁이라는 고통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이 악을 허락하실 수 밖에 없으셨던 이유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예루살렘에 대한 핍박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고통이 복음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듯이 공산주의자들의 핍박과 한국전쟁은 각 지역의 텃세를 무너뜨리고 그리스도인을 전국 각지에 흩어놓음으로서 한반도 전역으로 복음이 고르게 퍼지게된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현실은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의 손길이 거두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한없이 풍요하다면 중세 로마 카톨릭과 마찬가지로 죄에 대한 무감각과 교회의 부패로 인하여 교회가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부흥의 불길이 꺼지지 않으려면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영원한 생명을 순간의 행복과 바꾸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에 직면할 때에만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
교회와 성도의 부흥은 죄를 제대로 인식하면서 고통에 직면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죄에 대하여)
평양대부흥은 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비록 대부흥은 나라를 잃은 서러움이 가득하여 절망에 빠진 심령들을 위로하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지만 성령의 간섭하심으로 인한 첫 번째 경험은 죄를 직면하는 것이었다.
진정 이들이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자신들 안에 자리 잡고있던 죄의 모습들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집중되어있었음을 방위량 선교사는 기록하고있다.
국권의 상실과 일제의 압제는 이들의 내면의 죄보다 더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는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죄에 대한 고백과 회개는 복음이 내면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내면 세계의 변화에 의한 현상이었다.
이들에게 외부의 불행한 환경은 자신들을 일깨우기 위한 수단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다.
평양대부흥의 기간에 어떤 이들은 일본인들을 미워하였던 죄까지도 고백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일본의 압제보다 그들을 미워하였던 죄가 더 크게 다가왔었다.
극도의 절망으로 무너진 마음은 죄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의 출발이었지 절망 자체는 아니었다.
이와는 달리 일본인들의 강퍅한 마음은 발전과 팽창으로 인하여 더욱 견고하여져서 죄를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었다.
일본인들은 외부의 침입으로 인해 비통함에 빠져보질 않았기에 그들의 마음은 좀처럼 복음에 대하여 열릴 수도 없었고 더 나아가 죄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을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상한 마음이 없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았다.
조선의 절망감과 비통함은 복음에 대하여 마음을 열리게 하였으며 이는 죄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졌다.
죄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복음이 옳바로 전해졌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각자가 진리의 기준인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도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 해석된다.
이들에게는 결혼보다 동거가 더욱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동성간의 결혼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전파되는 복음은 죄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죄를 다르게 정의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더이상 구속주가 아니며 단지 삶의 본을 보여주는 윤리선생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기독교는 문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평양 대부흥을 경험한 이들은 결코 문화변혁의 주체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포스트모던 신학자들이 말하는 회개는 자신들의 기준에서 바라본 죄에 대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죄와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회개를 구원의 조건으로 말하지만 평양 대부흥에서 보여주었던 바와 같이 회개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물 중의 한가지였다.
일제나 공산주의하에서 핍박받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는 문화일 수도 없었고 따름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만으론 부족했다.
순교자들에게 그리스도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구세주였으며 자신들의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분이셨다.
일제와 공산주의자들은 진정한 죄에 대한 인식이 없었으며 그들은 단지 선을 파괴하는 악마의 하수인이었을 뿐이다.
이들은 마치 예수님의 탄생을 시기하여 어린 아이를 다 죽이고자했던 헤롯왕과도 같이 한반도에 일어난 하나님의 영광의 불길을 끄기 위한 발악을 했을 뿐이다.
인간은 죄인이기에 극단적인 어려움이 없이는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볼 수가 없다.
구한 말의 극단적인 국가적 어려움은 구원받은 죄인에게 죄를 드러내게한 성결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평양 대부흥의 경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평양 대부흥에 참여하였던 이들이 죄에 대한 제대로 인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복음과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헬조선이다.
구한 말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어려움은 아직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이 기다리고있음을 나타낸다.
영적인 축복과 부흥은 오직 죄를 깨닫고 죄에 대한 고백과 회개가 따라야만 한다.
죄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평양대부흥 때의 사경회 못지 않은 성경과 교리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이 선행되어야한다.
각 출판사마다 발행하는 교리에 관한 많은 서적들은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고있다.
평양 대부흥에서의 사경회와 같이 교리 공부를 통한 깨달음은 우리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죄악 가운데 놓여있는지를 인식시킬 것이다.
죄에 대한 인식과 회개의 열매가 맺어질 때 진정 한국 교회의 부흥을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다.
(용서하여야만 하는 이유들)
평양대부흥 기간 중의 성도들은 일제의 압박과 국권이 상실된 극단적인 절망감에서도 오직 자신들의 죄의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다.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면서 특히 다른 이들, 혹은 자신에게 해를 끼쳤던 이웃이나 일본인들을 미워하였던 죄를 고백하고서 용서를 구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이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해자임을 밝히면서 용서를 구하기도하였다.
부흥을 경험한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다스리기 위하여 다른 이들을 사용하셨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에 환란과 어려움의 일차적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식하였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셨기에 일제의 압박에 때를 맞추어 선교사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졌음을 인식하였다.
이들에게 일제는 악으로 여겨지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조선을 사랑하셔서 일제라는 악을 사용하셔서 조선인들의 완악함을 무너뜨리는 수단일 뿐이었다.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조선이었고 일본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부흥으로 인하여 외부의 상황이 변화된 것은 없었지만 조선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고 관심의 초점을 자신들의 문제에만 제한시킬 수 있었다.
평양 대부흥은 정치적 해방이나 문화 변혁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지도 않았다.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 정치적 환경이나 문화적 상황이 아니라 자신들의 복음을 거부한 죄에 대한 것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관점에서는 예수의 십자가를 로마라는 세상 권세에 대한 정치적 희생으로 보고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의 희생을 본받아 이 땅에 정치적인 하나님 나라의 구축을 바라고있지만 평양 대부흥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정치적 문제와 관련된 것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평양 대부흥은 문화변혁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아니라 환란의 일차적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인식하였기에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복음은 환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죄와 고난과 사랑에 대한 인식의 변환을 가져왔다.
평양 부흥 기간 중에 일본인들을 용서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나 자신의 아들을 죽인 청년을 입양할 수 있었던 손양원 목사의 경우들은 용서해야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고있었던 경우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제대로 이해하였기에 고난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용서를 제대로 이해하였었기에 용서할 수 있었다.
사랑이 없이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랑의 능력으로 용서할 수가 있었다.
인간은 나쁜 짓을 하여서 죄인이기 이전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본질적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미움은 사랑의 능력을 상실시키고 더 나아가 상대방을 해하는 정죄를 하게된다.
용서는 복음을 전해받은 이들이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게되는 은혜의 열매다.
평양 대부흥과 일제,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용서는 선교사들이 전하여준 복음의 결실들이었다.
한국의 현재의 상황은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
용서하지 못하고 정죄가 난무하다.
일제의 압제와 한국전쟁이라는 혹독한 환경 가운데서도 성도들의 일차적 목표는 용서와 사랑을 통한 거룩함에의 참여였다.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에 대한 일차적인 원인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와 성도가 욕심이 가득했고 선배들이 피값으로 세운 교회를 자신들의 배를 불리우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죄를 범하고있다.
한국교회의 희망은 목회자와 성도가 선배들이 피값으로 세운 교회를 더럽혔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서 용서를 구하면서 동시에 사랑이 없이 서로 정죄하기에 급했던 자신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해야할 것이다.
(부흥에 대하여)
방위량 선교사는 부흥에 관한 사건을 기록하는데 있어서 많은 지면을 부흥 이전의 상황을 기록하는데 할애하고있다.
방위량 선교사가 기록한 부흥의 모습에는 방언이나 치유등 서양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오순절 신비주의의 모습이나 혹은 사회변혁 운동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서구의 부흥은 기독교의 오랜 역사 한 가운데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던 반면 평양 대부흥은 수천년 동안 기독교를 접해보지 못한 민족이 죄의 암흑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시점에 있었던 조선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이었다.
평양대부흥은 이제 하나님께서 조선에도 함께하신다는 한반도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에서의 사건이었다.
평양대부흥은 다가올 혹독한 시련 가운데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신앙을 심어주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위로였다.
성령께서는 평양 대부흥을 통하여 거룩함이 죄와 공존 할 수 없음을 보여주셨다.
평양 대부흥에서는 개인의 뿌리 깊은 죄를 드러냄으로서 어떤 이는 살인죄를 고백하고 너무 고통스러워 정신을 잃는 이도 있었지만 죄를 고백하는 고통을 피하고자 불륜을 고백하지 않았던 방위량 선교사의 조사 상씨의 경우는 최악의 상황으로 나빠졌던 것을 보게된다.
부흥을 통하여 성령의 거룩한 옷을 입게된 자들은 이전의 죄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죄와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으로서 일제의 신사참배와 공산주의자들의 핍박 가운데서도 타협하지 않을 수 있었다.
평양 대부흥은 천상의 신비보다는 현실의 상황을 직면함으로서 다가올 험난한 세월들을 현실적 상황으로 직면하게하였던 진정한 의미의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 대부흥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7년에 떠들썩 했던 Again1907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평양 대부흥이 고난을 견디어내기 위한 성령의 간섭하심이라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람들의 인위적인 욕심에 의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평양대부흥의 주체는 사람이 아닌 성령이셨다.
성령의 역사하심에 사람들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평양 대부흥에서의 부흥은 부흥사가 부흥을 일으키려는 부흥주의와는 구별된 것이었다.
평양 대부흥은 교회의 확장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대부흥의 결과로 인하여 외부 환경이 나아진 것도 아니고 오직 험난한 시련만이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
평양 대부흥은 일제와 공산주의라는 시련의 과정 가운데서도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외적인 증거였다.
부흥을 경험한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거룩함에 합당한 모습이다.
성령의 간섭하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비록 외적인 부흥은 1907년이라는 시간에 한정되었지만 일제와 공산주의라는 박해의 과정 가운데 이전의 죄악된 모습을 벗어버리고 미래의 거룩함을 향하여 견고히 서는 시간들이 진정한 의미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와 공산주의자들로 인하여 비록 외적으로는 규모가 축소되었을 지라도 이러한 시련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체질을 깨끗하게 할 수 있었던 부흥의 시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제 36년은 복음이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 이씨 조선의 오랜 아집들을 내려놓게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으며 이북의 공산화와 한국전쟁은 각 지역의 텃세를 무너뜨리면서 그리스도를 전국 각지에 전하게 할 수 있었던 시련의 사건들이었다.
구한 말의 환란과 일제의 압제와 한국 전쟁에서의 고통은 수천년 동안 민족 깊숙이 자리 잡고있던 하나님을 거부였던는 죄를 드러내는 시간이었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평양대부흥과 마찬가지로 죄를 드러내고 새롭게되는 부흥의 시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읽고난 소감)
천주교는 개신교보다도 약 100년이 앞서서 조선에 전파되었지만 조선의 내적인 견고함으로 인하여 수많은 순교자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반하여 개신교는 토마스 선교사를 제외하고는 조선으로부터의 박해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견고한 시기에서의 조선에게 천주교는 거부할 대상이었지만 무너져갔던 조선에서의 개신교는 희망의 대상이었다.
시간적인 적절함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수천년 동안 정신적 지주였던 중국의 무너짐과 일제의 압제로 인한 조선의 정신적 공백은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간섭하심이었다.
천주교는 비공식적으로 임진왜란을 통하여 조선에 전래된 흔적이 있었고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도 기독교 사상이 전래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었지만 성리학과 유교 사상으로 무장한 조선의 배타성 앞에서 기독교 사상을 표현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였었다.
일제의 압제는 결코 선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일제에 발목이 잡힌 조선은 더 이상 기독교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취할 수가 없었다.
조선의 배타성이 제거된 시기에 전파된 선교사들의 복음은 부흥과 핍박을 통하여 한반도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림으로서 세계 역사상 전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성공적인 선교 사례를 보여주고있다.
그렇다고 일본의 역할을 선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마치 가룟인 유다의 역할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었다고 가룟 유다의 행동을 선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하나님은 일제라는 악을 조성하신 분이 결코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조선의 악을 깨뜨리시고자 일제라는 악을 허락 하신 것이다.
이제까지의 한국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현재의 국가적 어려움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헬조선이라는 용어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성도들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대부분 다른 이들을 정죄하기에 바쁘다.
페북에서는 정치인이나 재벌들에 대한 성토가 넘쳐난다.
평양대부흥은 국가적 어려움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는데 집중하였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재벌들의 악이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악이라면 목회자이건 성도들이건 과연 자신들의 근원적인 죄는 생각하지도 않고 정치인들과 재벌들을 성토하는데 온 힘을 기울일 수가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한다.
사회가 변화되기 이전에 교회가 변화되어야하고 그 안의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서 회개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나 자신도 수십년 동안 교회문제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있지만 교회 문제 이전에 나 자신이 사랑이 없는 정죄를 하였음을 고백 할 수밖에 없다.
평양대부흥에서 성도들은 문제의 1차적 원인이 자신들에 있음을 인식하고서 일본 사람들을 미워했던 죄를 고백하고있다.
우리는 현재의 헬조선의 1차적 원인이 자신과 교회에 있음을 망각하고 정치인들과 재벌들, 그리고 일본과 중국을 미워하는 가운데 정죄하고있다.
페북에서 넘쳐나는 정죄들은 자신들이 사랑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임을 끊임없이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간음한 여자를 잡아온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에게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셨던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과연 정치인들과 재벌들을 누가 먼저 자신있게 돌로 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죄가 드러난 간음한 여자보다도 스스로 죄가 없다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보셨고 결국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드러난 정치인들과 재벌들보다도 이들을 끊임없이 정죄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죄를 더욱 심각하게 보고 있으실 것이다.
인간의 죄의 심각성은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 처럼 죄를 짓기 이전에 인간이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것에 있다.
목회자와 성도는 죄의 현상들을 통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한다.
인간에게는 사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판단은 사랑이 없는 정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랑이 없는 정죄는 결코 성령의 열매가 될 수 없으며 그 안에서 성령이 역사하시는 부흥도 일어날 수가 없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진정한 부흥을 원한다면 우선 사랑하지 못하고 정죄만하는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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